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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가트

글러먹은 바람 2025. 1. 14. 04:42

[Trigger Warning-신체 절단, 유혈, 가스라이팅 등, 그 밖의 트리거 요소 다수 존재합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불쾌할 수 있으니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가장 무서워 하는 것.


두려울 것은 없다고 확신했다.

분명 마음 깊숙이 감춰왔던 내면을 마주하는 건, 그렇게 유쾌하지 않은 일이니까…… 마냥 웃어 넘기기만 한다면- 뭐든 괜찮을 것만 같았다.

그래, 주문만- 제대로 외우면 되는 거일 테니까…… 나는 그리핀도르잖아. 무서울게 없는 용감한 사자-

따위의 생각이나 하며, 소녀는 옷장 앞에 섰다.
덜걱대는 옷장은- 안의 무언가가 내부에서 몸부림치는 듯한 소리를 냈다.

저 안에서 꿈틀대고 있을 무언가가- 내가 그토록 ■■해온 공포로 변하는 것일까?

괜찮아, 두렵다거나…… 무서워하는 것쯤은 없으니까…… 괜찮을 거야.

아니, 괜찮아야만 했다.
앞의 친구들처럼 성공을 해내지는 못하더라도- 가장 약한 것을 ■■■싶지 않았으니까.

……유령이나 벌레, 괴물 같은 것을 무서워한 적도 없는걸!

“하아…….”

느리게 숨을 뱉고- 옷장을 바라봤다.
할 수 있어, 카렌.

자꾸만 기괴한 소리를 내던 옷장이 멈췄다.
지팡이를 꺼내 들고, 고개를 들자- 열린 옷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

끊임없이 시야에 흔들리는 붉은 것.
그것은 나비처럼 살랑이며- 그저 의자에 곱게 앉은 또래의 여자아이였다.

붉은 기가 도는, 탐스러운 갈색의 단발머리에- 아이는 나와 똑같은 리본과 구두를 신고 있었다.
새하얀 얼굴과 까만 눈동자까지…… 인형처럼 예쁜 이목구비에, 어째서인지 소름이 끼쳤다.

생전 처음 보는, 모르는 아이.
하지만 분명 본 적이 있던- 익숙한 모습이었다.

“카렌, 있잖아…… 왜 너만 다리가 있어?”

철퍽-.

제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양손으로 턱을 받친 채 생긋 웃는 아이의 발 밑으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빨간 구두를 신은 발이었다.
잘려나간 발이- 아이의 의자 밑을 뱅글뱅글 돌며 춤을 추고 있었다.


“……나도 카렌인데, 불공평하잖아.”

마냥 춤을 추던 발에 신긴- 새빨간 구두.
그 구두가 잘려나간 발에 붙어서 여전히 춤을 추고 있었다.

“어차피 너도 나랑 같아질걸?”

의자에 앉은 카렌- 그러니까, 어릴 적 들었던 동화…… '빨간 구두'의 주인공이었던 카렌이 못내 웃음을 터뜨렸다.

“있지- 네가 읽은 건, 어떤 판본이었어? 네가 읽은 판본의 카렌은- 구원받았어? 아니면 평생 춤을 췄니? 죽어버려서도? 응?”

아이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비틀렸다.

이어 의자에서 떨어지듯 내려와- 내 쪽으로 기어 왔다.
카렌이 기어 움직일 때마다, 바닥에 붉은 자국이 남았다. 발 앞까지 다가온 카렌이, 내 발목을 덥썩 잡아- 붙잡은 손에 점차 힘을 주며가며, 그러쥐었다.

“카렌, 너도 나랑 같아질 거야.”

“아…….”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시야는 흐릿하고- 온통 하얗게 번졌다. 귓가에서 구두가 혼자서 춤을 추며, 굽으로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쿵-!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고꾸라질 따름이었다.

실패네요, 카렌.


[ 카렌 레이첼, 실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