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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族

글러먹은 바람 2024. 11. 27. 13:26

가족.

<명사>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지는 것.


뒷 머리에 묵었던 리본을 풀었다.
길고 긴, 한없이 파란 리본을 목에 감았다. 양 끝을 쥐고… 교차하여 꼬아서, 당겼다.

천천히- 그리고 약간의 힘을 실어가며.
목을 조여 오는 리본이, 편안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아, 이대로 조금만 더 욕심 내볼까?

나도 이제 그만 ■■의 곁으로 가고 싶어.
■■, 만약 지금도 날 보고 있다면- 나를 끝내주면 안 될까.
제발, 나를 데려가 줘…… 버림받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 흐릿한 잔상이 일렁였다. 꼭 봄에 핀 벚꽃색의…… 익숙한 것이.

“유우카……!”

아, 너였구나.
그래…… 하긴, ■■일 리가 없지.

“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만둬.”
“……놓아주세요, 아이리스 상.”

손목을 잡힌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죽으려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래도 괜찮잖아요. 그렇죠?”

내가 왜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 그래도 친구니까. 들켜버린 것은 내 잘못이겠지…….

“그걸 지금 말이라고……!”

제법 큰 체격의 아이였으니까, 순간에 멱살이 잡혀- 고개가 들렸다. 맞닿은 팔이, 너무나도 불쾌해서…… 팔꿈치로 밀쳐냈다. 잠시 밀리는 듯싶다가, 이내 도로 달려드는 아이는- 꼭 한 마리의 벌처럼 보였다.

도로 달려든 벚꽃색 아이. 아이의 품에서, 지니고 다니던 부채가 미끄러졌다. 유려한 선을 그리며 펼쳐진 부채 사이로, 파랗게 빛나는- 날붙이가 나왔다.

……왜 저런 게 부채에 들어있던 거지?

정신이 아득했다. 차마 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작은 칼날이 팔을 스쳤다. 꼭 화상을 입은 것처럼, 팔이 뜨겁다. 떨어지는 칼날을 따라, 길게 이어진 상처로…… 피가 흘렀다.

“아…….”

어지럽다. 점차 호흡이 가빠진다.
뜨거워…… 어지러워, 머리가 아파…….

“가족을 생각해야지……!”

벚꽃색 인영.
벚꽃색 아이가, 외친 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가빠 오던 호흡마저 굳어버린 기분이었다.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팔에서 흘러나오는 핏방울마저 식어가는 것 같았다.

툭, 바닥에 핏방울이 떨어졌다. 그 소리마저 들릴 적막이었다.
불안한 낯으로 외쳐대던 그 아이의 얼굴에, 희미한 안도감이 떠올랐다.

“그래, 잘 생각했어…… 유우카-.”

콰앙-.

“……가족?”

기가 찼다.
코웃음을 치곤, 여린 목을 그러쥔 손에…… 힘을 실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고, 아이리스의 얼굴도 눈물인지 다른 것인지 모를 것으로 얼룩져 있었다.

“내가, 거기서 어떻게 도망쳐 나왔는데……!”

벽을 받침 삼아, 아이리스의 목을 두 손으로 쥐고선- 눌렀다.
차츰 일그러져가는 아이리스의 얼굴이 보였다. 눈물 때문에- 시야가 자꾸만 흐려졌다.

퍼억-.

배에, 까만 메리제인이 날아들어와 꽂혔다.
아마 살기 위한 아이리스의 방법이었겠지…….
이해해.
내가 보는 너는,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으니까.

배에 무언가 꽂히는 감각쯤은 익숙했다. 이럴 때는- 그저 웅크려 배를 감싸 앉고…… 바닥에 주저앉아서 충격을 최대한 땅으로 보내면 되니까.

“윽…….”

그저 입을 다물고, 새어 나오는 신음을 따라 입술을 짓물렀다.
오랜만에 맞아서 그런가…… 익숙하게도 낯선 감각이었다.

“하아…….”

느리게 숨을 뱉었다. 이내 목에 감았던 리본을 풀었다.
피가 흐르는 팔을 눌러 지혈하곤, 파란 리본으로 상처를 단단히 감아 묶었다.

“마땅한 붕대는 없으니까…… 일단은 이렇게 둬야겠네.”

너는, 꼭 벚꽃 핀 봄날의 호박벌 같구나.

“■■가 줬던 건데…… 이렇게 써버려서 미안해, ■■. 그래도 이해해 줄 거지?”

멍하니 허공을 봤다, 바닥에 하늘빛 부채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두고 간 모양이네.

부채를 주워 들었다, 날붙이는 없었다.
날붙이는 챙겨 간 모양이네.

“아…… 눈 아파.”

눈이 뻐근했다.
렌즈를 너무 오래 끼었나.
하긴, 좀 오래 끼긴 했었지……….

“……그만 빼야겠네.”

교실을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이미 멋대로 나와버린 거, 조금 늦게 돌아가면 뭐 어때.

텅 빈 화장실 문을 열고- 세면대를 틀어, 비누로 손을 씻었다. 노란 렌즈를 전부 빼낸 뒤……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어차피 더 쓸 일은 없으니까.

찬물로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들었다. 눈앞의 거울에- 한없이 파란 눈동자가 비쳤다.

“……다들 눈동자 따위엔 관심도 없을 테니까. 상관없겠지-.”

검을 빼들고는- 텅 빈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강당과는 정반대 편으로.

“……산책 좀 하고 올게요.”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기다리지는 말고.